새로운 군웅할거, 텐쇼임오의 난(天正壬午の乱) - 1
서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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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9 06:59
prologue) '패왕' 노부나가의 사후, 이에야스의 거취는? - https://www.fmkorea.com/5702843542
(볼륨주의!)
"사나다는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가.."
故 신겐이 "나의 눈"이라고 칭할 정도로 특출난 재능을 가졌던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
신푸성 축성, 이와비츠 하향 진언 등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케다의 멸망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누마타 성과 이와비츠 성, 전략적인 요지를 지배하였으나 강력한 다이묘의 뒷배가 절실했던 사나다.
결국 마사유키는 노부나가에게 말과 영지 대부분을 바치고 오다 정권에 편입되는 듯 했지만..
1582년 6월 2일, 혼노지의 변으로 인해 노부나가가 사망.
토고쿠(東國)의 정세는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6월 6일, 오다의 모리 나가요시(森長可)가 시나노에서 이탈,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는 카와나카지마 4군의 지배를 위해 각지의 토호들을 회유한다.
"이치마스를 안심시킨 후 병력을 모아 우에노를 평정한다."
6월 11일, 노부나가 사망을 알게된 호죠 우지마사(北条氏政)는
타키가와 이치마스(瀧川一益)에게 협력을 약속, 그 다음날에는 병력을 소집.
6월 15일에는 카이 동부의 잇키를 선동.
6월 16일, 준비를 끝마친 호죠는 타키가와에 선전포고한다.
우세했던 타키가와였지만..호죠 우지나오가 이끄는 5만에
중과부적으로 패배, 우에노(上野)는 호죠의 것이 된다.
사나다 마사유키는 때를 놓치지 않고
무주공산이 된 누마타, 이와비츠의 영지를 차지.
마사유키 : 자~ 호죠코인 드가자 ww
7월 9일에는 우에스기에 복종하려던 생각을 바꿔
호죠의 예하에 편입, 우에스기의 카츠가 노부타츠(春日信達)를 회유한다.
7월 12일, 호죠군이 우스이 고개를 넘어 시나노에 침공을 개시.
다음 날에는 키소 요시마사(木曽義昌)와 스와 요리타다(諏訪頼忠)가 호죠에 복종한다.
당시 스와로 진군 중이던 도쿠가와의 사카이 타다츠구(酒井忠次)는
14일, 요리타다의 배신이 명확해지자 스와 타카시마(高島)성을 포위.
카츠가 노부타츠의 배신 계획이 발각, 처형에 쳐해진다.
호죠 우지나오 : 어..이러면 좀 곤란한데, 그만 싸우는거 어떰?
우에스기 카게카츠 : 음, 그렇다면 뭐..
전력 소모를 피하고 싶었던 호죠와 우에스기의 생각이 일치.
7월 19일, 양측은 정전하는데 합의한다.
7월 29일, 호죠 우지나오는 후방을 사나다 마사유키에게 맡기고
사쿠(佐久), 스와(諏訪)를 경유해 카이로 진군을 개시.
이에 호응하여 호시나 마사나오(保科正直)도 호죠에 붙었으며,
8월 1일, 우지나오군이 카이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를 접한
사카이 타다츠구는 타카시마성의 포위를 풀고 군을 물린다.
이틀 뒤, 카시와바라에 호죠군이 도착했다는걸 접한
타다츠구는 적을 요격하기 위해 오코토로 향하는데..
(오코토에서 카시와바라는 차로 30분 거리)
문제는, 호죠에겐 도쿠가와가 1만 쯤이라는 정보가 있었지만
아직 타다츠구는 호죠 측이 4만 3천이라는 걸 몰랐다..!
오쿠보 타다요 : 사카이 경, 적의 4만 3천이라 하옵니다만..?
사카이 타다츠구 : 아니; 타키가와랑 싸우고 우에스기랑 대치하다가
여기까지 온 것도 신기한데 쪽수가 말이 안되잖아..?
오카베 마사츠나 : 여기 있다가는 전멸당할 듯 하온데..
일단은 신푸로 퇴각하는게 상책입니다!
사카이 타다츠구 이하 수뇌부는 퇴각을 계획.
마침 호죠 측에도 도쿠가와 군이 오코토에 있다는 정보가 들어온다.
호죠 우지나오 : 야야 내가 봤을 때는 이거 무조건 출진해야 돼.
적이 1만 쯤 되는데 쟤네는 별동대잖아? 꼴랑 몇천일거야, 못 이기면 할복 ㄱㄱ
호죠 중신들 : 저 산 근처에서 복병 숨긴거 아닐까요?
후달릴거 없는데 걍 타 부대 합류 후에 싸우시죠 ㅋㅋ
"아앍 개ㅆ발!! 지금 이런 찬스를 놓치는게 말이 되냐?"
"얘들아 지금이다 시발.. 튀어!!!"
"복병이 있는데 왜 저렇게 튈까!? 다 엎드려!!"
당시 너무 젊은 후계자 우지나오의 혈기를 우려한
아버지 우지마사가 붙여준 중신들이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악재가 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