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는 용이가 싫어! 나리는 산이가 싫어!
교강용의 결혼식. 그리 많지 않은 신부측 하객들과 달리 나름 바글거리는 강용의 하객들은 중털들과 소털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일반인의 눈으로는 그 차이의 구별이 어렵다. 아니, 그들의 눈에는 그저 본인들과 다를 바 없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비추어질 터. 하지만 교강용의 결혼식에 집결한 중,소털 쯤 되면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다. 일류 대털인 교강용은 짱구는 거른다. 그에게 인정받는 것은 최소 소털 부터다. 그리고 그 정도의 경지가 되면 축의금을... 내면서 훔친다!
한편 신부측 하객들은 준비해온 축의금 봉투가 하나같이 비어있음에 아연했다. 그 중 일부는 근처 ATM기에서 재차 돈을 뽑아오기도 했지만 그것은 돈만 이중으로 털리는 빌어먹을 결과를 도출하는 것에 그쳤다. 난감한 표정의 하객들 곁으로 강용의 오랜 하수인, 쓰레빠가 뭉치 째로 훔친 식권을 팔기 위해 손가락 세 개를 펼친 채 다가서고 있다.
결혼식이 끝나고 얼마 후. 소희는 친구들로부터 들어온 축의금을 셈하고있다. 아무리 중소털 들이라도 신부대기실 까지 행동 반경을 넓힐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다이렉트로 신부에게 간 돈만이 겨우 제 기능을 하고있다.
"오빠, 축의금 얼마 들어왔어?"
"나? 영 원."
"뭐, 뭐라그?"
"영 원."
소희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용은 자신과 달리 적잖은 인맥이 있어보였고, 식장에서도 강용의 지인들이 훨씬 많았던 것이 정신없는 신부의 눈에도 번연할 정도로 수의 차이가 확연했던 것이다.
"…뿌린 게 얼만데 영원이야?"
그녀에게서 들은 말을 믿기 어렵다는듯 강용이 놀란 얼굴을 했고, 그의 놀람 정도는 확실희 그녀의 것을 능가하고 있다.
뭐랄까, 자존심이 건드려졌다는 표정을 애써 자제하는 새신랑 교강용.
"뿌렸다고? 이 내가…"
교강용에게 0원의 축의금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아니었다. 축의금을 내면서 훔치는 스킬은 사실상 그가 시초였기에. 말하자면 그것은 그를 축하하러 온 사내들의 의기투합의 결실이기도 했고, 어찌 보면 업계 탑인 교강용을 향한 존경의 표시라고도 볼 수 있었다.
소희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세계였지만.
어쨌거나 여유로운 얼굴의 교강용. 옅은 미소를 띤 채 지난 하객 시절을 떠올리고 있다. 문득 스치는 기억에 입가의 미소가 좀 더 깊어진다.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사시미의 대가 개나리의 결혼식을 통째로 털었던 것은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수 년 전 황산의 사무실.
지상 45층의 높이를 자랑하는 재력가 소유의 건물. 그 위용을 일반인들은 올려다보며 느끼겠지만 황산이나 교강용같은 프로들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알짜배가 정보가 입수되는 법이다. 그 건물의 핵심은 오직 비밀리에만 존재하는 지하 3층의 금고였고, 해당 프로젝트를 계기로 대면 중이었던 황산과 교강용. 황산의 입에서 개나리의 결혼식 얘기가 나온 것을 시작으로 그들이 결혼식을 한 입에 삼킬 마음을 먹은 것은 순전히 즉흥적이었다. 모든 일을 철저한 계획 하에 움직이는 그들이었기에 전례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평소 스케일에 비하면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이기도 하고, 뒷일이야 어쨌건 개나리를 벗겨먹는 것 쯤이야 그 둘에게 있어서 쉼표 하나 정도의 난이도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저 무심코 던지는 돌이었다고 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모바일 청첩장 조차도 보내지 않은 나리에 대한 성의 표시 정도로 해 두자.
황산 : 추산되는 축의금 액수는 이억!
강용 : 이 억!!!!
황산 : 거기서 끝이 아니야. 그녀의 예비신부도 만만치 않다는 소문이다.
강용 : 신부를 뭘 어떻게 한다는 말입니까?
황산 : 가방순이의 가방을 턴다.
강용 : 가방을 어떻게? 날치기라도 쓸 생각입니까?
황산 : 그런 잡배를 어디다 써먹어? 제비를 쓴다.
황산 : 그래. 가방순이가 누구인지 추측하는 것은 아이큐 150인 나에겐 일이라고 부를 수도 없어. 그녀가 화장실에 가 있을 동안 매너 있게 화장실 문 앞에서 가방을 들어줄 미끈한 남자친구를 우리 쪽 사람으로 미리 섭외해놓는 거야.
강용 : 쿄꾜꾜
황산 : 겔겔겔
강용 : (씨익 웃으며) 그럼 직접 뛰어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형님이 어디 가서 빠지는 외모는 아니잖소.
야릇하게 메마른 웃음을 터뜨리는 황산.
청첩장을 보내지 않은 이유라면 개나리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종종 담배가 없으면 말을 못 하는 게 아닌가 의구심이 생길 수준의 줄담배광공 황산이 웨딩홀 에서도 담배를 꼬나물지 않을까, 그리하여 친인척 앞에서 사연있는 남자로 보이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탓이었고, 축의금을 0원 씩이나 낼 게 뻔한 강용 나부랭이는 단순히 황산과 세트로 엮어버린 것이었다.
실제로, 아마 우연이겠지만 신랑입장에 맞춰 담배를 꺼내 문 황산이 신랑 만큼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니 괜한 기우는 아닌 셈이었다. 솔직히 황산은 부케에도 담배를 비벼 끌 패기 정도는 있는 놈이었다.
그나저나 황산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추후 감옥에서만 담배를 안 피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감옥이 아닌 곳이라면 어디든 그의 줄담배를 향한 집념에 장애는 없어보였다.
그닥 멀지 않은 미래, 황산의 감옥 룸메가 될 교강용은 황산의 건강을 빌며 감옥을 연장할 것을 권유하게 된다. 황산 또한 국민건강검진 통지서에서 보다 양호한 결과를 받기 위해 감옥 카운터에 전화를 걸어 "저, 황산인데요. 네. 6개월만 연장하려구요. 네네. 감사합니다." 따위의 간단한 전화 한 통으로 수감 기간을 연장할까 고민해보게 되지만.. 미래의 황산 역시 과거 / 현재의 황산만큼이나 필수 영양소보다 니코틴의 흡입이 간절한 류의 인간이기에.. 과연 미래의 황산은 활기찬 금연 라이프를 위하여 감옥을 연장할 만큼의 자제심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원래 조금쯤의 서먹함이 있는 사이였건만. 결혼식을 기점으로 개나리는 교강용의 이죽거림만 생각하면 렘수면 중에도 벌떡 일어났으며, 밥 먹다가도 떠오르는 황산의 비웃음소리에 이를 부득부득 갈곤 했다.
초호화 결혼식에 황홀해하던 그의 아내 또한 고작 식날 가방순이와 머리채를 잡고 싸웠던 일 따위로 아직도 자신을 원망하고 있지 않은가! 왼쪽 볼에 싸대기를 집중적으로 맞은 탓에 그 쪽만 블러셔 효과가 짙어진 것을 어쩌란 말인가! 게다가 자신은 봐도 차이도 잘 모르겠던데!!!
"내 돈 내놔 이년아!"
"내 가방 내놔 이년아!"
"자기야 진정해. 돈도 가방도 엄한 놈이 털어갔는데 둘이 싸운다고 되겠어?"
"오빤 내가 왜 싸우는지 몰라!?"
"..!!!!!!."
두 여자가 합창을 하는 순간 소름이 다 끼쳤다.
현 여친과 전 여친의 눈동자 네 개가 사정 없이 깜빡였다.
급기야 신부가 드레스 안에서 너클을 꺼내는 바람에 전여친… 아니, 가방순이는 앞니가 온통 나가있었고, 나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어왔다.
"나료파하 나 다라지이거 업허?" 집요할 정도의 재차 물음에 급성 스트레스로 비명을 지르고싶은 욕구를 견디며 얼른 깽값이라도 쥐어주고 보내고자 확인했던 축의금 통은 바닥이 뚫려 아래층과 연결된 듯 기묘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여기서 더 최악은 불가능해질거라고 예상하자마자 곧바로 가능해졌다. "개서방... 아니 이 무슨..." 때마침 다가온 장인 장모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오죽하면 언제부턴가 황가놈과 교가놈은 꿈에서조차 기웃거렸다. 뚜둘뚜둘 맞으며 싸움을 말리려는 자신의 모습. 나리가 와이프의 어깨를 잡자 청초한 척 돌아보는 순백의 그녀인데 얼굴만은 황산! 경악에 차 물러서려는데 개처럼 짖으며 자신의 허리를 꽈악 끌어안는 전여친의 투피스… 는 불 보듯 교강용.
뚜왓!
급히 얼굴을 더듬어보는 개나리. 꿈 속에서의 저는 엉엉 울고있었는데 두 뺨이 건조하다.
단 한번, 강용은 개나리 주위를 얼쩡거리며 개 소리를 흉내 낸 적이 있었고, 그 일이 깊은 의식 속에서 상처로 남은 것이었다.
악몽 속에서 몸을 뒤틀다시피 하여 겨우 일어나자 다행히 아내는 잠 든 채다.
아니, 어쩌면 잠든 척을 하고있는 중일지도…?
둘 사이의 의심은 결혼생활 전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준비 중에는 미처 몰랐었다. 아니, 미쳐 몰랐었다고 해야 할까?
오한이 가시지 않은 채 가만히 아내의 돌아누운 등을 바라보는 개나리.
그녀가… 순이와 나 사이의 일을 얼마나 알고있을까.
락이 걸려있는 와이프의 휴대폰.
이것 저것 다 두들기다 혹시나 해서 꾹꾹 눌러보는데 하필 방순이의 생일에 열리는, 그 참담함이라니!
설마 싶었다. 진짜 설마..
이래서야 휴대폰을 봤다고 해서 그런 비슷한 내색이라도 할 수 있겠어?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너 요새 이모티콘 잘 안 쓴다며. 그냥이라며.
제비한테는 아끼지 않는구나. 나한테도.. 예전에는…
그 날이 어쩌면 우리 관계를 회복할 마지막 기회였을까? 얼마 전 아내는 말했었다.
"그 때 말이야."
언제? 라고 나리는 속으로만 물었다. 그들 사이를 습관적으로 가로지르는 고독은 부정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있었다.
"날 불렀다고 생각했어."
"…"
"그 년이랑 싸울 때 오빠가 자기야, 라고…"
아내의 입가로 짐짓 힘겨운 미소가 떠올랐다.
"바로 오빠를 봤는데. 눈이 안 마주치는 거 있지. 오빠가 날 안 보더라."
"앗…아아..."
"혹시,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 날 정신 없었잖아, 우리. 나는 게다가 너클에 맞았었어.
그럼에도, 무슨 대답이라도 했어야 했다. 최소한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어떤 노력이라도 보였어야 했어. 어렴풋이 웃고있던 그녀의 얼굴이 매섭게 식기 전에 그랬어야 했는데! 앞니가 나가리 된 구여친의 공격이 시기 부적절하게 떠오르지만 않았어도 그럴 수 있었을텐데!
"오빠. 구여친 아니잖아."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양주를 나발불던 자신이 저도 모르게 구여친을 중얼거리고 있었는지 옆에서 아내의 얼굴을 불쑥 나왔다. 경기를 일으키며 놀라는 개나리.
"…뭐?"
"사이에 한명 더 있었잖아. 그럼 방순이는 뀨여친 아니야!?"
"ㅅㅂ 뀨뀨여친이다!!!!"
"이랑ㄴ매서ㅣ봇비소애먀야!!!"
이후 한층 급속히 냉정해진 그와 그녀의 관계. 그들은 서로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무심한 부부면 차라리 나을까? 고찰한다고 알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일차적으로 본인을 향했던 질책은 점차로 번져나갔다. 자신, 아내, 그리고 다른 사람들..
와이프가 제비를 대놓고 만날수록 개나리 또한 호스티스에게 열을 올렸고, 그럴수록 산과 용을 향한 분노는 심화되어갔다.
담배만 봐도 황산이 떠올랐고, 어쩔 때는 지나가는 개만 봐도… 그럴듯 한 포즈로 기침하는 척 하면서 개짖는 소리를 신명나게 내지르던 교강용 놈이.. 눈이 마주치자 뒤 돌아서며 어쩐지 웃음을 참는 듯 한 모습이 스트레스성 환청과 겹쳐 서로 앞지르기라도 하듯 덮쳐오곤 했다. 그 생각만 하면 눈물이 왈칵 흐르는 개나리는 그 생각이 예상보다 너무 자주 떠오르는 바람에 부하들의 눈을 피해 눈물 샘을 뺀찌로 조여야만 했다.
그래, 짖어라 씨발. 더 짖어도 괜찮아. 괜찮은데…
전화번호부를 두른 방순이의 모습으로는 제발 더 이상 내 수면을 방해하지 말아다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가면을 쓰고 있으니, 그의 침잠된 고통은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
"야 이 개색히야! 운전 똑바로 못 해?!"
앞 자리에서 핸들을 쥔 놈이 외치는 소리가 꽤나 과격했다.
필시 교 놈 탓이었다. 개로 시작되는 욕지거리를 들으면 반사적으로 움찔하는 어깨를 감추고자 정장을 한 치수 크게 입는 개나리.
교강용 네 놈만 아니었어도. 그리고, 망할 황가놈. 너희 둘만 없었어도… 옵하 나 다라지이거 업허? 그만! 그만!!! 열 받게 몽창 나간 앞니를 가린 채로 물어보면 어떡해! 제발 그만 좀 해!! 돈 줄테니까 그만 해!! 여길 봐 분명히 축의금이 잔뜩..!!?? 구대 이거 비허흐데? 오파 도호니 업허?? 구대 나하 다라지히거 업서? 끄으아아아아아악!!!!!!!
고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꼭 두 놈이 나왔다.
내가 이 놈놈들을 그냥!
허나 아무리 내가 이 놈놈들을 그냥을 백 번을 중얼거려도 교.황 놈들이 끼쳤다고 생각하는 해악에서 단 한걸음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는 개나리.
아내는 여전히 저를 무시하고,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는 없고, 복수심이 더해져 사무쳐 하루가 멀다 하고 여자를 갈아치워도 갈급함은 여전했다. 저에게 잘 보이고자 고개를 조아리고 아부를 떠는 수많은 사내들을 봐도, 채워지지 않는 무력감.
교강용과 황산이 피땀 흘려 턴 돈을 쎄볐던 이유는 그저 물욕만은 아니었을 터.
나리는 용이가 싫어! 나리는 산이가 싫어!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