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카페? 유사카지노? ‘홀덤펍’ 정체는
외국에선 마인드 스포츠로 인정
환전·경품이 불법 여부 결정
카지노 유사행위 처벌 추진
“게임 즐기며 맥주 마시고 가세요!” 최근 대학가 곳곳에 홀덤펍이 등장하고 있다. 홀덤펍 안은 카지노에서 볼 법한 테이블과 칩이 배치됐다. 패 2장과 공유 카드 5장으로 플레이하는 텍사스 홀덤이 주로 진행되는데, 외국에선 마인드 스포츠로 인정받고 있으며 2028년 LA 올림픽 시범종목으로 거론된다.
지난 7월 12일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선 ‘홀덤펍 불법도박 대응방안’이 논의됐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위원장=오균, 사감위)를 중심으로 정부 합동 ‘홀덤펍 불법대응 TF’도 구성했다. 식약처는 전국 홀덤펍 운영실태를 조사하고 경찰청은 집중단속 및 검거공로자의 보상금을 올렸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관광진흥법 개정을 추진 중이고 여성가족부는 사행성 게임 업소를 ‘청소년 유해업소’로 지정하려 한다. 대학가에 친근하게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경계 대상이 된 홀덤펍의 실체는 무엇일까.
카지노 대체재 ‘홀덤펍’의 성행
늦은 저녁, 붉은 간판에 불이 들어온다. 반짝이는 간판이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끈다. 홀덤펍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먼저 있던 손님과 종업원이 인사를 건넨다. “처음 방문하셨어요? 게임 룰은 아시나요?” 계산대에서 2만원을 내고 맥주와 게임 이용권을 받는다. 테이블 중앙의 딜러에게 이용권을 건네고 칩을 받는다. “게임에서 어떤 닉네임을 사용하시겠어요?” 닉네임을 정하고 테이블에 앉자 점차 사람들이 늘어난다. 딜러는 인원이 채워지자 카드를 분배하며 게임을 시작한다. 게임이 무르익은 순간, “올인!” 닉네임 ‘드래곤’은 주변 템포를 따라 베팅하다가 올인을 외치고 파산한다.
본교 서울캠퍼스가 위치한 안암동 참살이길에도 홀덤펍이 들어섰다. 김정빈(자전 경제20) 씨는 길을 가다 홀덤펍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방문했다. 김 씨는 “자주 갈 땐 일주일에 두세 번 갔다”며 “보드게임처럼 건전하게 즐기고 있다”고 전했다. 1년 전부터 주 1~2회씩 홀덤펍을 찾는 남동엽(자전 경제20) 씨는 “홀덤 자체는 체스 같은 마인드 스포츠”라며 “불법도 아니고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아 건전하게 이용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본교 사회학과에 재학 중인 A씨는 친구를 따라 홀덤펍을 접한 후 매달 홀덤펍에 방문한다. 그는 “게임에서 지면 이기고 싶어서 계속 찾게 된다”고 전했다.
한국홀덤스포츠협의회(KHSA)에 따르면 2019년 전국에 1000여개였던 홀덤펍은 2022년 기준 2800여개로 늘어났다. 일반음식점이나 보드게임 카페로 사업자 등록을 한 후 현금 게임을 하는 곳을 합하면 총 7600개로 추정된다. 홀덤펍은 별도로 신고하거나 허가받아 운영하는 체제가 아니기에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긴 어렵다. 이준석 사감위 불법사행산업감시신고센터장은 “홀덤 관련 협회는 2000여개, 식약청은 일반음식점으로 신고된 업체를 600~700여개로 추산 중”이라고 전했다. 최상수(세명대 호텔관광경영학과) 교수는 “홀덤펍으로 사람들이 카지노에 가지 않고도 쉽게 게임을 접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현재 국내에서 유일한 내국인 허용 카지노인 강원랜드는 강원도 정선에 있어 접근성이 좋은 홀덤펍이 대체재가 됐다는 것이다.
테이블·칩, 홀덤펍은 불법일까
홀덤펍은 도박일까. 게임으로 얻은 칩이나 포인트를 환전하거나 경품을 제공하는지가 이를 결정한다. 도박은 형법이 금지하고 있는 범죄행위로, 도박행위를 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 형법 이외에도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 특례법’은 ‘여러 사람으로부터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모아 우연적 방법으로 득실을 결정하여 재산상의 이익이나 손실을 주는 행위’를 사행행위로 규정해 사행행위영업을 하려는 자는 시도경찰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위반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 도박 이용자는 형법 제246조 제1항에 의해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고, 상습적으로 도박을 한 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사업주와 직원들은 도박장 개설죄로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나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실제 홀덤펍의 합법 여부를 구분하긴 어렵다. 일일이 업장의 환전 여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준석 센터장은 “환전으로 이어져야 불법인데, 실제 영업행태를 하나하나 확인해야 하기에 정확한 계산이 어렵다”며 “합법이라며 운영해도 실제론 불법인 곳이 많다”고 전했다. 카카오톡엔 1000명 넘게 참여한 홀덤펍 관련 오픈채팅방이 여럿 있다. 해당 채팅방엔 가게 홍보 글이 하루에 수백 개씩 올라온다. “모든 게임 프라이즈 90%!” 홀덤펍을 운영하는 B씨는 “걷은 돈의 90%를 환전해 준다는 뜻”이라며 “카톡과 텔레그램 등에 오픈채팅방이 많아 불법 업체가 상당히 많으리라 추정된다”고 말했다.
남동엽 씨는 “홀덤펍에서의 홀덤 토너먼트 게임들은 게임 티켓으로 시상한다”며 “시중에서 이 티켓을 사고팔기에 결국 돈으로 지급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적으로 열리는 홀덤 대회가 ‘시드권’을 이용해 불법행위를 한다는 지적도 있다. B씨는 “현금으로 구매한 시드권을 모아 우승자에게 상금을 주는 방식”이라며 “대회 내부에선 현금이 오가지 않아 단속이 어렵다”고 전했다. 다른 스포츠는 선수가 협찬을 통해 상금을 받는 구조가 많다. 반면 홀덤 대회는 참여자들이 돈을 주고 구매하는 시드권으로 진행돼 도박과 같다는 것이다. 정완(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칩 환전을 적발하기 쉽지 않아 시드권 구매행위 등을 모두 열거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불법 홀덤펍만 별도로 규정한 법률은 없으며, 형법을 통해 간접 적용 중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문체부와 사감위는 ‘카지노 유사행위 금지·처벌 조항’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준석 센터장은 “현재 홀덤펍은 불법사행산업감시신고센터의 감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해당 법안을 추진 중이다”고 전했다. 해당 조항은 신종유형의 사행행위를 도박으로 간주해 홀덤펍을 포함한 모든 업종의 카지노 유사행위를 범죄로 규정한다. 정완 교수는 “규정이 신설되면 특정 행위의 도박 여부를 해석할 필요가 없다”며 “홀덤펍 등 불법 범죄행위의 규제와 단속이 훨씬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전하면 OK?
환전이나 고액 상품 없이 운영되는 건전한 홀덤펍은 안전할까. 손님들이 홀덤펍을 건전하게 즐기도록 노력했다는 사장 B씨는 손님들이 불법에 빠지는 모습을 많이 접하고 회의감이 들어 고향으로 내려왔다. 많이 운영하던 매장도 수를 줄였다. 그는 “처음에 건전하게 왔던 사람도 자극을 얻으려고 돈을 건다”며 “너무 빠지지 말라는 조언에도 중독되는 경우가 많았고, 가게에서 알게 된 손님들끼리 자체적으로 돈을 걸고 게임을 하더라”고 지적했다.
B씨의 지적처럼 건전한 홀덤펍에서 게임을 즐기다가 불법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잦다. 재학생 A씨는 “일반 홀덤펍에서 불법으로 가는 루트를 알려줄 때도 있었다”며 “현금으로 보상하지 않아도 현금화하기 좋은 상품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남동엽 씨는 “홀덤펍을 다니며 실력을 자부하는 이들은 대부분 캐시 게임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불법 펍에 간다”고 말했다.
홀덤펍이 늘어나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관심 없던 학생들도 끌어들인다는 의견도 있다. 권채린(숭실대 AI융합학부21) 씨는 “학생들은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고 유흥에 빠진다”며 “대학가의 홀덤펍 성행은 학생들에게 유혹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민서희(여·21) 씨는 친구와 놀기 위해 보드게임 카페를 찾다가 홀덤펍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는 “성인들이 술을 마시며 게임을 하는 건전한 곳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연세대 21학번 C씨는 “신촌을 걸어 다니면 잘 보이는 곳에 홀덤펍 매장이 많아 가깝게 느껴졌다”며 “카드 게임을 하며 술 마시는 곳인 줄 알았는데 얼마 전 중독되거나 불법으로 빠진 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돼 놀랐다”고 말했다.
홀덤과 도박의 분리, 불법행위에 대한 강한 단속과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정진유(경영대 경영20) 씨는 “대부분의 카드 게임은 건전한 친목이라 생각한다”며 “도박 처벌과 단속을 강화해 불법 시장 유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남동엽 씨는 “확실한 법적 기준을 가지고 홀덤펍을 규제해야 한다”며 “홀덤의 불법화가 아니라 중독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완 교수는 “통상 도박행위를 포함해 홀덤펍 등 불법사행산업을 적극 단속하지 않을 경우, 도박 중독으로 파산하거나 정상적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며 “도박은 어떤 경우에도 금지되는 ‘범죄’로 규정하고 법정형을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출처 : 고대신문(http://www.kunew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