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동휘(38)가 모처럼 새 이름을 얻었다. 2015년 방송된 tvN ‘응답하라 1988’의 ‘류동룡’ 역으로 대중에 도롱뇽으로 깊이 각인됐던 그는 디즈니+ ‘카지노’로 무려 8년 만에 ‘양정팔’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쉼 없는 연기 활동으로 착실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오는 게 배우의 일이지만, 대중에 각인되는 이름을 얻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 변화무쌍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던 그는 ‘카지노’를 통해 완벽하게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고, 결국 새로운 이름으로 오래도록 회자되고 있다.
‘카지노’는 필리핀 카지노의 전설이었던 차무식(최민식 분)이 위기를 맞이한 후, 코리안데스크 오승훈(손석구 분)의 집요한 추적에 맞서 인생의 마지막 베팅을 시작하는 이야기. 이동휘는 차무식의 오른팔이었으나, 결국 그를 배신하는 정팔 역을 연기했다.
“정말 욕 많이 먹고 있습니다 하하하하.”
하지만, 서글프게도(?) 그를 향한 시선은 온통 손가락질이다. ‘카지노’에서 내내 차무식의 아픈 손가락으로 (좋게) 표현된, 소위 ‘폐급’ 인성을 보여주더니 막판엔 완벽한 배신의 아이콘으로 거듭난 탓이다.
‘카지노’ 종영 인터뷰에서 이동휘는 차무식의 최후를 정팔이 완성한 점에 대해 “개인적으로 시청자 입장에선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결말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시즌3를 암시하는 브릿지 장면에 정팔이 화려하게 등장한 데 대해선 얼굴을 찡그리며 손사래 쳤다.
다만 이동휘는 한창 ‘카지노’를 촬영하던 당시에도 최종회차 대본은 받아보지 못했었다고 했다. 때문에 정팔의 손에 의해 차무식이 최후를 맞는 설정 역시 알지 못했다. 그는 차무식의 최후에 대해 “(최민식) 선배님은 차무식이 최측근에 의해 허무하다 느낄 정도로 한순간에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긴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동휘는 “개인적으로는 뭔가가 계속 잘 되면 불안한 마음이 있다. 늘 잘 되면 좋은 게 아니라, 안 좋은 일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편인데 사실 차무식을 보면 모든 게 다 잘 해결되지 않았나. 때문에 그렇게 허무한 결말을 맞는 것도 어떻게 보면 현실적이지 않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에 차무식이 먼저 정팔을 죽였거나, 자기 차를 탔거나 하면 살았을텐데 공교롭게도 차 키가 없어서 정팔이가 타고 온 차를 타게 됐잖아요. 그런데 하필, (정팔이로선) 죽일 마음이 없어서 키박스에 총을 넣어뒀었는데 상구가 죽는 걸 보면서 ‘나도 무조건 죽겠구나’ 느꼈을 것 같아요. 말 그대로 그냥 생존 그 자체였죠. 자기가 살기 위해 방아쇠를 당긴 거죠. 그런 우연과 우연의, 인생의 선택이 한순간에 달라지는 걸 조금은 현실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차무식의 최후는 처절하리만큼 쓸쓸하고 현실적인 결말이었지만, 그길로 사라졌다 돌연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큰 손’이 되어 돌아와 장준(이제훈 분)과 대면하는 양정팔의 엔딩은 말도 안 되게 비현실이라는 게 이동휘의 설명이다.
이 장면에 대해 이동휘는 “설명을 듣고 너무 당황해서 ‘촬영장에 안나가면 안될까요’ 싶었다”면서도 “시즌3가 공론화된 건 없지만 정팔이를 끝내는 맺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동의했던 부분도 있다”고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팔이라는 ‘인간’은 이동휘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심지어 그는 “개인적으로는 정팔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어느 정도 공감이 가야 연기하는데, 정팔이는 절반 이상이 도무지 이해가지 않는 행동들이었다. 일반적으로 돈을 빌리면 갚아야 하지 않나. 그런데 정팔이는 전혀 그렇지 않은 거다. 자신이 빌린 돈을 갚지 않아놓고도 차무식에게 ‘형이 갚은 거 아니였냐’고 하고. 횡령하고 잠수타고 없어지는 사람들, 가짜 울음을 우는 사람들의 심리를 연구하며 연기했다.”
차무식의 오른팔로 활약한 만큼 극중 상당한 분량을 최민식과 함께 한 이동휘. “선배님은 늘 한 시간 전에 와서 준비하신다. 정말 중요한 점을 배웠다”고 운을 뗀 그는 “선배님이 연기 합을 농구 경기에 비유해 말씀하시며 변칙적 합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기 위해선 엄청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선배님과 함께 하며 더 많은 노력과, 공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선배님의 가장 많은 씬을 함께 하고 가장 많은 일정을 함께 하며 느낀 점은, 선배님은 진짜 완벽한 마에스트로 같은 느낌이었어요. 완벽하게 지휘하고, 조율하고, 설정하면서. 선배님이 이 ‘카지노’를 다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인물 인물을 만나면서 달라지는 굴곡을 보면서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같이 있을 땐 몰랐던 부분들을, 작품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느꼈죠. 정말 차무식 그 자체, 처세의 달인이자, 어떤 배우를 만났을 때도 자기만의 코어가 분명히 있는, 그런 경이로움이 느껴졌어요.”
최민식이 ‘카지노’ 차무식으로 인생 캐릭터를 또 하나 추가한 것처럼, 이동휘 역시 ‘카지노’의 정팔로 강렬하게 거듭났다. 그는 “작년까지도 ‘동룡이 왔니’라거나 도롱뇽 말고 도마뱀이라고 하시는 분도 계셨는데 지금은 ‘정팔이형’ ‘정팔이 왔다’라고들 해주신다. 오랜 시간 도롱뇽으로 불렸는데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 자체가 되게 신기하고 생소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동휘는 “하지만 나의 대표작이라 하기엔 맣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카지노’는 최민식 선배님의 대표작이고, 선배님이 아니었으면 탄생도 안 했을 작품이다. 나같이 부족한 배우와 연기 해주셨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며 “아직까지는 내 대표작은 오지 않았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다수의 작품에서 진중한 듯 능청스럽게 ‘변칙적’ 웃음 코드를 선보여 온 이동휘. 그는 “내 연기를 보고 부모님이 웃으시는 모습을 보며, ‘나도 동휘형 같은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글을 보며 보람을 느끼지만 배우 본래의 자세로 본다면 늘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론 힘든 일이다.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고, 특정 장르, 캐릭터에 특화된 배우들에겐 대체로 그와 같은 대본이 들어온다. 그게 업계의 현실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다 아주 간혹 배우의 고민을 이해하고, 기회를 주고 싶다고 하는 실낱같은 기회가 있는데, 나는 그런 희망을 갖고, 중심을 잃지 않고 나의 자리에서 부단히 열심히 하면 그런 날이 올 거란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카지노’라는 작품을 만났다. 정팔이가 기존 내가 해왔던 윤활류 같거나 약간은 느슨해질 때 해야 할 역할이 있는 인물이었지만, 전체적인 정팔이의 서사는 기존 내가 한번 했던 역할(‘타짜2’ 찰리)보다 훨씬 더 악랄한 사람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